본문 바로가기

일상

글렌드로낙 & 글렌파클라스 1993년 빈티지 시음회 (feat. 사당 육감)

 

위스키 동호회와의 시음은 2012년 정도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아마도 탈리스커 버티컬 시음회였던 것 같다. Taliker 30년이었나 40년까지 나왔던 시음회를 마지막으로 하고 행위의 습관을 이어오지 못한 것은 자꾸만 수원 남부로 집을 옮기며 생활하던 그간의 사정이 있었다.

 

 

오늘은 모처럼 다시 동호회 시음회에 참여하려 사당역 맛집 육감으로 향했다. 이미 위스키 동호회원들에게는 꿈의 일처(一處)로서 같은 취미의 길을 걸어 가시고 동호의 장을 열어주시는 사장님께서 운영하시는 곳으로 이미 유명을 얻은 곳이었다.

 

 

오늘의 출전선수는 1993년 동갑내기들인데 글렌파클라스(Glenfarclas) 24년산과 글렌드로낙(Glendronach) 23년산의 진검 승부다. 소위 쉐리 몰트 3대 명가 중 두 곳을 이루고 있는 증류소로서 93년도라는 빈티지를 내걸고 벌이는 자존심 싸움이 되겠다.

 

 

글렌드로낙은 2016년도에 병입하여 스무세살이라는 스테이트먼트를 가졌고 53.4%의 스트렝스를 지녔다.

 

 

글렌파클라스는 2017년도 병입인데 59.4%의 스트렝스로 알콜 증발량이 거의 없이, 증류한 그대로의 스트렝스를 지녔다.

 

 

그렇게 위스키를 시음하려고 하니 같은 동호회원이신 육감 사장님께서 식전주로 화이트 와인 한 병을 도네이션해주셨다.

 

 

거대한 노징 글라스에 담긴 Catalina Sounds라는 와인은 놀라울 정도로 볼륨감 있는 과실향을 뿜어댔고 팔레트는 그 거대한 관능성에 불구하고 미디엄-드라이한 맛으로 매우 균형잡힌 텍스쳐를 선보였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번에 마신 몰트들이 녹진한 단맛을 뿜어내는 스위트한 계열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딱 이정도의 드라이한 와인이 후에 마실 몰트 시음을 방해하지 않고 식감을 돋우는, 알맞은 식전주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육감 사장님의 선별안과 세심한 배려에 감사함을 느꼈다.

 

 

이어서 특수부위 모듬이 나오고

 

 

숯이 들어왔는데 2시간여 동안 세 네판의 고기를 구우면서도 끝까지 화력을 유지해 준 퀄러티 높은 숯불이었다.

 

 

담백한 치맛살을 먼저 올리고

 

 

테이블을 봐주시는 이모님께서 맞춤하게 구워주셨다.

 

 

그와 동시에 이번 벙주님께서 글렌드로낙을 먼저 배분해 주셨는데,

 

 

50밀리씩 서빙되었다.

 

 

글렌파클라스도 곧바로 배분.

 

 

 

 

싱글몰트 테이스팅을 위한 글렌캐럴 글란스가 두 벌씩 준비되었기에 양쪽을 한 번에 두고 비교 시음할 수 있었다. 왼쪽편이 글렌파클라스이고 오른쪽이 글렌드로낙인데 틴트의 경우에는 글렌파클라스 쪽이 더욱 진한 편이다.

 

 

위스키 시음에 앞서 세치혀의 코팅을 위해 고기를 먼저 먹는다. 무장공자(無腸公子)와 함께 가장 맛있는 넘의 살, 소고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살치살도 올리는데 마블링의 정도가 최상급의 살치살로 보였다.

 

 

 

녹진한 살치살.

 

 

 

그렇게 혀를 코팅한 다음, 글렌드로낙을 먼저 마셔보았다. 탑노트는 전형적인 쉐리 몰트의 향기로 말린 포도가 메인 프로파일을 차지하고 너티한 풍미가 배면에서 느껴졌다. 팔레트에 올려보면 미디엄-드라이한 수준에 전형적인 쉐리 몰트 다운 맛을 주고 놀라움을 느끼게 한 것은 피니쉬 국면에서 복합적인 쉐리향을 팡팡 터트리며 매우 긴 피니쉬를 주는 것이었는데 피니쉬 중간에 살짝 솔티한 맛이 돌다가도 이내 건포도와 몰티한 피니쉬로 지속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간 카발란이나 아벨라워 아브나흐와 같은 어린 쉐리 몰트만 마시다가 스무살 넘은 완숙한 글렌드로낙을 마시니 레벨의 차이를 확연히 알게 해주었다.

 

 

 

글렌파클라스의 경우에는 탑노트가 글렌드로낙에 비해 약하고 섬세한 편이었는데, 글렌드로낙에서 느낄 수 있었던 너티함은 거의 보여지지 않고 시향의 끝에서 살짝 시트러스한 산뜻함이 묻어나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팔레트에 올려보면 글렌드로낙과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바디감을 보여주고 코와 입 깊숙한 곳까지 날카롭고 쎄한 니스향을 때려 넣어주는 것이 글렌드로낙 쉐리와 다른 점이었으며 피니쉬도 긴 것이 과연 고숙성 다운 클라스를 보여 주었다.

 

글렌파클라스의 쎄한 니스향의 경우에는, 거기에 건과일향과 오크향이 같은 프로파일이 복합되어 더욱 진하게 어우러졌다면 란시오까지도 느끼게 했을 포텐셜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아마도 증류소 관계자도 이 원액을 맛 보면서 조금만 더 캐스크가 좋았다면 수퍼 울트라한 몰트가 나오지 않았을까 아쉬워했을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글렌드로낙은 처음부터 자기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반면에 글렌파클라스는 보다 복잡한 내면을 가졌기 때문인지, 탑노트에서 과실향은 날아가고 꽃과 화초 향기가 짙어지면서 플로럴 부케를 느끼게 하는데 매우 큰 변화량을 맛보게 했다. 마치 수확이 끝난 포도원의 쓸쓸함이랄까... 성하(盛夏)의 여름 과일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고 입추로 들어가는 지금 무렵에 어울리는 위스키인 것 같았다.

 

 

고렇게 마시다가 동호회 운영진분께서 지난 스코틀랜드 증류소 투어 때 핸드필(Hand-fill)로 가져오신 글렌고인을 알보용으로 협찬해 주셨다. 내 기억으로 맥켈란이 흔했던 당시에도 글렌고인 캐스크 스트렝스는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는데 그 귀한 몰트를 협찬해 주신 것.

 

글렌고인의 탑노트는 눅진한 바닐라향이 강했고 방금 마신 두 가지 몰트와는 다른 개성을 보여주었다.

 

 

 

고기 세판 정도 클리어했을 때 육감 사장님께서 서비스로 주신 육회. 이곳 고기는 아무리 많이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과 감칠맛을 가진 것 같았다. 내가 다녀본 고깃집 중에서 당연 최상위에 속하는 맛집이었다.

 

 

그 다음 알보용으로 등장한 것은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 형님이 좋아라 한 잭 다니엘. 현재는 찾기 어려운 올드 보틀이다.

 

 

보통 캐스크 스트렝스 몰트 위스키를 마시고 블렌디드를 마시게 되면 쌉싸름한 나무맛 밖에는 나지 않는 게 보통인데, 이번 잭 다니엘은 니트로 마셔도 개성을 잃지 않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역시 술은 옛날 것이 좋은...

 

 

잭 다니엘이 나온 김에 잭콕도 마셔보기로.

 

 

거국적으로 치어스~

 

 

육감의 마지막엔 김치찌개가 빠질 수 없다고 하셔서 테이블 당 하나씩 올렸는데 그 국물맛이 너무 좋아 공기밥 두 그릇을 순삭하게 되었다.

 

 

귀하신 글렌고인도 고인이 되셨다.

 

 

육수를 세 번 정도 리필해 가며 먹은 김치찌개. 요 근래에 먹은 찌개 중 단연 탑이라 할 수 있었다. 싱글몰트도 글렌드로낙과 글렌파클라스 등 오래간만에 수준급 쉐리 몰트를 마실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이었다.